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오시프 스탈린/각국 정상들과의 관계 (문단 편집)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파일:external/study.zumst.com/C1E-00-1003-00001_06.jpg|width|=100%]]|| || [[얄타 회담]]에서 왼쪽부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오시프 스탈린]] ||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은 연합국의 세 주축인 [[미국]], [[소련]], [[영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전시의 전략적 결정 및 전후처리를 위해 여러 차례 회동했다.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인상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도리가 없지만, 루스벨트는 [[파시즘]]에 대해서는 강경했던 반면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유화적이었고, 때문에 전쟁 중에 이루어진 몇 차례 회담에서도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상반되는 이념에 비해서 다소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이라는 불편한 동맹국 지도자의 호의를 이용할 능력과 의도가 충분한 자였고, [[국제연합]]이나 자유선거 등 미국의 다소 이상적인 전후 구상에 장단을 맞추어주는 대신[* 이후 동유럽에서의 자유선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철의 장막]] 너머에는 죄다 소련의 후원을 받는 공산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그나마 국제연합은 6.25 전쟁 등 강대국간 삐걱거림이 존재하긴 했으나, 어찌저찌 돌아가긴 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공인받는 데 성공했다. 당시 나치와의 전쟁으로 국력을 대거 소모한 소련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자본과 공업력이 건재한 데다 [[렌드리스]]를 통해 사실상 연합군의 전쟁 물자를 대부분 책임진 미국에게서 상당한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는 루스벨트 안티들에겐 전후 냉전의 주도권을 내줄 뻔한 실책이자 스탈린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이건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거고, 적어도 2차 세계 대전 후기까지는 미소 양강 체제에 대한 대비보다 우선 추축국를 패퇴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당면 과제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서구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루스벨트는 미국-영국-소련 사이의 삼파전을 예상했기에 영국을 협력할 사이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경쟁해야 할 상대로 보았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가 미소 양강체계로 재편성되었다는 것 역시 결과론적인 이야기로써, 2차대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차대전 이전 양대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패권을 포기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도리어 전후 식민지를 재확보하여 자신들의 패권을 재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맹국이 아닌) 미소 양국과 동등한 열강의 입지를 가지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루즈벨트 자신도 이에 대해 '나치에 의해 쑥대밭이 된 유럽 국가들이 아직도 식민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제국주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탄했던 것. 예를 들어 나름 연합국의 한 축으로 활약한 영국은 둘째치고 2차대전으로 스타일 왕창 구긴 프랑스조차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 바밀레케 전쟁, 거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끼어든 [[수에즈 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50년대 내내, 심지어 6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식민지를 재확보하려는(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히 '대영제국'과 '위대한 프랑스', 즉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동맹체제의 한 구성국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세계 정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열강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대한 프랑스는 무조건 식민지를 가져야 한다'고 우기던 강경파들보다 훨씬 더 이상적인 판단이 가능하던 [[샤를 드골]]은 더이상 식민지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세계정세의 변화를 인정하고, 대신 핵개발을 통해 미국 중심의 안보체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국방 노선을 위대한 프랑스(=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이류 강대국이 아닌, 독자적으로 세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국가)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 노선은 핵무기뿐 아니라 [[미라주 시리즈]]나 [[라팔]]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독자적 무기 개발 노선으로 21세기 현재까지 나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2차대전 후반기 (및 대전 직후) 영국과 프랑스의 입장 및 행보와 그에 따른 루즈벨트의 대처를 20세기 후반~21세기의 기준, 즉 연이은 식민지 전쟁 이후 두 국가가 미국을 수장으로 한 서방 동맹에 종속된다는 처지를 받아들이게 된 이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유럽의 제국주의는 어차피 몰락해가던 것 아니냐'고 보는 관점도 있지만, 이런 관점은 이미 일어난 현상과 그 결과는 상수로 보고, '다른 행동을 했었다면 얻을 수 있었으리라 기대되는 결과'만을 변수로 보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구 식민열강의 식민지 재확보(및 패권 재확립) 시도가 실패한 원인의 상당부분이 미소 양대 열강의 견제에 있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구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견제를 소홀히 하고 대신 소련을 견제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면 견제력이 약해진 만큼 영국 등의 식민제국들이 다시 열강의 입지를 되찾는 시도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아직 미성숙한 소련보다는 기존 서방국들의 영향력을 조정하는 일에 더 관심을 쏟았고, 이것은 루스벨트뿐 아니라 그렇게나 [[공산주의]]를 경계했다는 처칠도 해당되는 일이다.[* 이러다보니 처칠 본인도 말년에 후회했듯이, 공산주의 콤플렉스로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을 용인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한다.] 게다가 루스벨트가 전후의 소련을 어떻게 대할지 자체가 루스벨트의 급사로 오리무중에 빠져버려서 루스벨트가 친소적이었다는 공화당 강경파 일각의 드립이 나오게 된 것이지, 당장 키신저만 해도 루스벨트는 오히려 스탈린을 이용해먹은 정황이 있으며 그가 살았으면 어떤 냉전 질서가 구축되었을지, 그가 스탈린을 상대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후임인 트루먼은 딱히 소련에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사실 이 점 때문에 스탈린이 더 반서방적으로 틀어진 점도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친서방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스탈린이 죽었다면 이후 소련의 스탈린 격하 운동과 상대적 탈권위주의 흐름을 생각해볼 때 잘만 구슬렸으면 진짜 동유럽에서 수십 년은 일찍 자유선거가 치러졌을지도 모를 일.] 사실 루스벨트는 소련뿐만 아니라 [[중화민국]] 등 제3세계 국가들에도 나름 온정적인 편이었으며, 이는 세계 제1강국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먼저 손을 뻗어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루스벨트가 단순히 스탈린에게 양보만 한 것은 아니라, 스탈린의 대일전 참전 약속을 받아냈으며 이는 사실 2천만 명 넘게 희생한 소련을 다시 큰 희생이 요구되는 다른 전쟁으로 끌어들인 외교적 소득이었다. 원자폭탄 투하와 [[만주 작전|소련군의 참전]]으로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에 [[몰락작전]]이 다소 간과되지만, 원폭 개발 이전에는 미국이 일본 본토 점령 과정에서 [[몰락 작전|거의 100만이 넘는 희생을 각오하고 있었으며]], 일본과 중립 조약을 체결한 소련을 여기 끌어들이기 위해 유럽에서 대폭 양보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몰락해가던 서구 제국주의를 공산주의보다 더욱 경계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어수룩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루스벨트를 제외한 미국 정계는 당연히 영국보다 소련을 훨씬 경계했는데 이를 루스벨트가 묵과했다. 또한 정치인은 결과로서 말하기 때문에 결과론도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처칠이나 후임 트루먼이 보인 반공주의 태도를 상기할 때 결과적으로 루스벨트의 지나친 대소 양보는 아쉬움이 남고 분명 정치인으로서 저지른 실책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